◆ 은행發 돈가뭄 심층분석 / 2000조 유동성시대 자금난 왜 ◆
시중에는 돈이 넘쳐 흐른다. 바야흐로 시중 유동성 2000조원 시대가 열리면서 유동성 과잉과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미래에셋 인사이트펀드로만 5조원에 가까운 자금이 몰렸고 해외펀드 열기 역시 식을 줄을 모른다.
하지만 돈이 흘러나오는 원천인 시중은행에선 현금이 모자라서 '돈가뭄'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풍요 속 빈곤'이다.
◆ 은행이 유동성 증가 주범
= 은행들의 '돈가뭄'은 은행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은행들의 대출과 펀드 판매 경쟁은 시중 유동성 증가 속도에 불을 질렀다.
은행에서 예금이 빠져나가면서 결제성 예금만으로 구성된 M1(본원통화)은 정체 또는 감소하고 있다.
대신 은행에서 빠져나간 돈은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으로 몰리면서 M2(광의통화) 증가에 불을 질렀다. 올 들어 국내외 주식형 펀드로 몰린 돈은 62조원. 증권사 CMA 계좌로도 약 18조원에 가까운 돈이 몰렸다.
예금이 없어 자금이 부족해질 때 시중은행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양도성예금증서(CD) 발행을 늘리는 것이다.
CD가 늘어나면서 M2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금융기관 유동성(Lf)도 덩달아 빠르게 늘어났다.
11월 M2 증가율이 전년 대비 11% 수준까지 급등하면서 유동성 과잉에 따른 인플레이션 염려를 높인 근본 원인은 시중은행에 있었던 셈이다. 광의유동성(L)은 10월 말 기준으로 전년 동기비 12.8%나 늘어나면서 전체 규모가 2000조원을 넘어섰다.
한국은행은 10월 광의유동성 증가 원인으로 은행의 CD와 은행채 발행을 꼽았다. 시중유동성의 '고삐'를 풀어헤친 주범으로 은행을 지목한 것이다.
◆ 건설계 등 실물 부문 영향줄 수도
=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사실 지난 몇 년간 은행들의 대출경쟁이 도를 넘어섰던 것 아니냐"며 "최근 자금시장 움직임은 보는 관점에 따라 은행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정상화 과정'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도 "시중은행장들이 돌아다니면서 정부에 외화유동성 등 단기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얘기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CD 금리를 경쟁적으로 높여 가면서 자금을 조달한 뒤 그 부담은 서민들에게 다 떠넘겨 놓은 시중은행들은 올해도 사상 최대 순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꼬집었다.
은행이 돈 없다는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지나친 외형 경쟁에서 벗어나 있는 돈이나 제대로 굴릴 궁리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해석하기에 따라 은행권의 대출자산 재조정을 예고하는 발언으로 들릴 만하다.
은행 관계자는 "다소 방만하게 집행한 대출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건설업계 등 실물 부문에도 충격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 1개월마다 유동성비율 100% 준수 규제 고쳐야
= 은행들의 돈가뭄에는 후진적인 자금시장 구조와 유동성 비율 등 은행 규제도 한몫하고 있다.
CD 금리는 연일 치솟지만 정작 은행들이 하루짜리 급전을 조달하는 실세 콜금리는 오히려 한국은행 목표치인 5.00%를 하회하고 있다. 지난 6일에는 4.86%까지 떨어져 목표 콜금리 5.00%보다 0.14%포인트나 낮았다.
은행들이 단기자금 부족에 시달린다고 하소연하지만 정작 은행들이 하루짜리 단기 급전을 조달하는 초단기 콜시장에서는 자금이 철철 넘쳐 흐르고 있는 셈이다.
한 시중은행 자금부장은 "석 달에 한 번씩 105%로 맞추던 유동성비율을 한 달에 한 번씩 100%로 맞추는 과정에서 자금의 미스매치가 발생하는 게 최근 은행 자금 문제가 심각해진 원인"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이 지난달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무려 1조원이 넘는 MMDA를 발행한 까닭도 결국 유동성 비율을 맞추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지적이다.
MMDA에서는 9월만 해도 1조4143억원이 은행권에서 순유출됐지만 10월에 4조3460억원이 순유입된 데 이어 11월에는 5조원이 넘는 돈이 시중은행으로 흘러들어갔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MM
DA는 만기가 짧은 부채임에도 불구하고 유동성비율을 계산할 때는 자산으로 70%를 인정해준다"며 "최근 들어 MMDA가 크게 늘고 은행들이 돈가뭄에 시달리는 것은 한 달에 한 번씩 유동성 비율을 맞추느라 허덕이는 과정에서 생겨난 결과"라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은 최근 은행 돈가뭄 문제에 대해 은행 스스로 풀어야 한다는 원칙에 흔들림이 없다.
은행들이 자산을 유동화시킨 다음 해외시장이나 기관투자가에 내다팔아서 대출자산을 줄이든지 아니면 경쟁력 있는 예금상품을 내놓고 수신 마케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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