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내비게이션 지도는 어떻게 만들까

조선일보|기사입력 2007-12-08 14:17 |최종수정2007-12-08 14:26 

차 안의 만능 검색기가 된 내비게이션. 길 안내뿐 아니라 음식점 추천까지 한다. /맵퍼스 제공

골목 수퍼도 훤히 아는 내비게이션 지도

原圖업체는 5곳뿐… 실사팀이 직접 찾아가 정보 입력

그냥 지나친 길 소비자가 오류 잡아내는 일도 다반사

과속단속 정보는 2주일에 한번꼴로 가장 자주 갱신


내비게이션 모니터에 비친 배경은 온통 푸른 바다. 그 위에 자동차가 떠있다. 내비게이션 화면만 보면 차량은 지금 바다 위를 달리고 있는 셈이다. 지난 5일 오전 10시쯤 내비게이션 지도 제작업체 ‘맵퍼스’의 교통정보 입력 차량은 전남 고흥반도와 소록도를 연결하는 연륙교 위를 달리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현장 실사요원이 차선, 가드레일, 회전 정보를 꼼꼼히 살피고 노트북 컴퓨터의 지도 정보 입력 프로그램에 차례로 쳐 넣었다. 마지막 입력을 마치자 GPS 위성이 추적한 차량 주행 경로를 따라 바다 위에 다리를 나타내는 검은 선이 나타났다. 지난 9월 가개통된 소록대교가 내비게이션 지도에 입력되는 순간이었다.

2005년 80만 대였던 내비게이션 기기 시장은 2006년 130만 대, 올해는 230만 대 규모로 커졌다. 불과 3년 사이에 3배 가까이 불어난 것이다. 전체 등록 차량(이륜차 제외)의 15% 정도가 내비게이션을 단 셈이다. 단순한 길 안내 수준을 넘어 음식점·여행지 추천까지 하는 내비게이션. 골목 슈퍼마켓 이름까지 알고 있는 이 지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내비게이션 원도(原圖)를 제조하는 업체는 국내에 다섯 곳. 원도 제작사는 내비게이션 지도를 만들기 위해 국립지리정보원에서 종이 지도와 수치 정보도를 구입한다. 하지만 이 지도에는 지형과 도로의 윤곽만 있을 뿐이다. 도로 주행에 필요한 도로 종류, 제한 속도, 신호, 차선, 회전 방향 등의 정보는 없다.

원도 제작사는 수도권 위주로 10~20개 실사팀을 운용한다. 지방(부산·대전·대구·광주 등)에 3~4개 팀을 별도로 고정 배치한 곳도 있다. 이들은 수도권의 경우 하루 평균 150㎞, 지방은 평균 370㎞를 달린다. 실사팀의 일상 업무는 새로 바뀐 교통 정보 입력. 도로의 너비, 신호 체계, 회전 허용 등이 바뀐 곳을 찾아 넣는 것이다.

새로 뚫린 길을 찾아서 입력하는 일도 있다. 국립지리정보원은 정기적인 갱신만 해주면 되지만, 이들은 도로 개통과 동시에 이 길을 안내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설교통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도로 개통 공고를 보고 현장을 확인하는 것도 주요 업무다. 전국 포장도로의 총 연장은 2000년 6만7265㎞에서 2006년 7만9161㎞로 17.7% 늘었다. 엠앤소프트의 천규성 대리는 “새로 뚫리는 도로를 포함해 평균적으로 1년에 30% 정도 교통 자료가 바뀌기 때문에 계속 도로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 정보 입력은 철저한 수작업이다. 19세기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든 방법과 마찬가지로 지도에 나와있지 않은 길을 직접 가보는 식이다. 차선, 신호, 가드레일의 형태, 표지판, 회전 구분 등은 모두 육안으로 확인하고 기록한 결과를 가지고 손으로 입력해야 한다. 정확하게 하기 위해 입력을 마친 곳도 사진으로 기록해 붙인다. 첨단 위성 기술이 작동하는 것은 오직 도로의 형태를 입력할 때뿐. 새로 뚫린 도로를 반복적으로 주행하면 그 기록을 바탕으로 도로의 형태가 자동 입력된다.

입력 작업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일도 있다. 지도에 안 나오는 길을 들어가 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도로가 아닌 곳에 자동차를 타고 들어가는 것은 불법. A사의 실사 요원은 실사 차량을 타고 국립공원 안 숲길을 달렸다. 그는 “입구에서 어디서 왔냐고 묻기에 ‘도로 정보 수집하러 왔다’고 말하자 들여보내줘서 잠자코 들어갔다”며 “안 되는 일인 건 알았지만 도로 정보가 너무 탐이 났다”고 말했다.

실사 작업이 시골 마을의 땅값을 올려놓은 일도 있다. B사의 실사팀장은 이틀 정도 어느 마을 주변 도로를 실사했다고 한다. 그 뒤 마을에는 도로 개통 소문이 퍼졌고, 한동안 마을 땅값이 들썩거렸다고 한다.

실사 요원들보다 더욱 예리한 이들은 바로 내비게이션 사용자다. 실사 요원이 그냥 지나간 길의 문제점을 사용자들이 잡아내는 일도 다반사라고 한다. 사용자는 자신이 잘 아는 길이기 때문에 작은 잘못도 금세 잡아내는 것이다.

맵퍼스 마케팅팀 장재호 차장은 “12개 팀이 매일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지만, 아파트 안에 과속방지턱이 새로 생기는 것 같은 정보는 고객의 지적이 없으면 알아내기 힘들다”며 “고객의 적극적인 참여가 내비게이션을 정확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즉, 어떤 내비게이션에 아파트 단지 안의 작은 정보까지 입력돼 있단 것은 그 동네 주민 중에 굉장히 열성적인 사용자가 있단 말이다.

업체 입장에서는 오류 지적을 하는 고객은 공짜 실사 요원이나 다름없다. 팅크웨어의 박상덕 팀장은 “아이나비 홈페이지에 등록한 회원 수만 100만명에 달하기 때문에 다른 업체보다 빠르게 오류를 수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엠앤소프트가 출시한 ‘맵피’ 최신 버전은 제품명에 ‘협력’을 뜻하는 ‘유나이티드(united)’를 넣고, ‘70만 소비자 참여’를 광고의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

요즘 원도 제작사들이 가장 수집에 주력하는 분야는 ‘관심 위치 정보’다. 맵퍼스 사업2본부의 견종서 부장은 “한국 운전자들은 내비게이션이 뭐든지 다 찾아주길 원한다”며 “음식점, 은행 등 사람들이 알 만한 건 뭐든지 다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제작사들이 정보를 입수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전화번호부에 등록된 정보는 일단 무조건 입력하고,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업체 정보도 당연히 입력 대상이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에는 때로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정보도 검색된다. C사의 데이터베이스팀장은 “건물 정보를 외부에서 구입하다 보면 탈법적으로 입수한 듯한 정보가 있지만, 아무 말 없이 받아 넣는다”며 “문제가 있다고도 생각하지만, 품질을 높이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내비게이션 지도에서 가장 자주 갱신되는 정보는 뭘까. 과속 단속 정보다. 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도로 변동에 대한 정보는 보통 2개월에 한 번꼴인 데 비해 과속 단속 정보 등 교통 안전 정보는 평균 2주일에 한 번 정도 갱신된다. 이동식 과속 단속기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 사용자 모임을 통해서 위치가 공유되기도 한다.

팅크웨어 GIS개발본부 허석 부장은 “열성적인 소비자들이 나서서 정보를 공유하는 덕분에 업체 쪽에선 과속 정보에 덜 집중하게 됐다”며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정보라서 자주 갱신한다”고 말했다.

내비게이션에서 찾을 수 없는 것도 있다. 군 관련 시설, 발전소와 같은 기밀 시설은 검색 제외 대상이다. 하지만 예비군 훈련장은 예외로, 많은 내비게이션에서 검색된다.

◆내비게이션은 

정확한 명칭은 카 내비게이션 시스템. 지구 궤도에 떠 있는 GPS 위성을 이용한 도로 안내 장치다. 24개 위성 중 3개 이상의 위성으로부터 신호를 받아 삼각 측량 방식으로 위치와 속도를 계산한다. 이를 기기 안에 든 지도와 비교해 길을 안내한다. 위성의 역할은 위치를 알려주는 것뿐이기 때문에, 내비게이션 기기와 지도의 정교함이 길 안내의 성능을 좌우한다.
by facestar 2007. 12. 10. 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