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화물선 침몰원인 의혹 증폭
한국일보 | 기사입력 2007-12-27 18:33
사고前 무자격 업체가 선박수리

허가 없이 구멍 용접… 선체 결함 가능성

악천후 무리하게 대응하다 휩쓸렸을 수도

사흘째 생존자·시신 등 수색 성과없어

‘이스턴 브라이트호는 왜 침몰했을까?’

25일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침몰한 화학약품 운반선 이스턴 브라이트호가 사고발생 12일 전에 연료탱크에 구멍이 생겨 긴급 선박수리작업을 했던 것으로 27일 드러났다. 그러나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해경 등 전문가들은 “연료탱크 파공은 선박 침몰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밝혀 침몰사고를 두고 궁금증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현재 사고원인에 대해서는 몇 가지 추정만 나올 뿐이다. 우선 사고 선박 노후화에 따른 선체결함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 선령(船齡) 15년인 사고 선박은 13일 여수항 중흥5부두에 입항하기 위해 항만 밖 정박지에 대기하던 중 기관실 좌측의 한 연료탱크에 생긴 직경 1㎝ 가량의 파공을 발견하고 긴급 용접 수리작업을 한 것으로 해경 조사결과 밝혀졌다.

해경은 이에 대해 “사고 선박이 격벽의 이중선체 구조로 돼 있고 연료탱크의 파공 부위를 봐도 바닷물의 선체 내부 유입으로 인한 선박 침몰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선사 측은 선박수리 자격이 없는 잠수사업체인 H수중개발에 용접작업을 맡기고 H개발도 스크루에 걸린 로프제거와 배 밑바닥 검사만 한다고 여수지방해양수산청에 허위 신고한 것으로 밝혀져 이들이 또 다른 선체결함을 숨기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현행법상 선박에서 용접 등 불꽃을 동반한 작업을 할 경우 선박의 안전문제 등을 이유로 반드시 ‘선박수리’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H개발 측은 단순 ‘공사작업’ 신고만 냈다.

여수해양청 관계자는 “선박수리의 경우 선박안전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허가를 내줄 때 는 공사작업허가와 달리 매우 까다롭게 검토한다”며 “잠수사업체가 허위신고를 하고 용접작업까지 했다면 당시 선체 결함 등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무척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해경은 이에 따라 사고 선박회사인 NHL개발㈜와 H개발 관계자 등을 상대로 선체 외판의 균열 및 파공, 기관고장 등 또 다른 선체 결함이 있었는지 여부와 허위 작업신고를 한 이유 등에 대해 집중 조사하고 있다.

사고해역을 운항할 때 조타수가 강풍과 높은 파도에 복원력을 잃은 선박을 바로 잡으려고 조타 키를 급하게 왼쪽으로 돌리는 바람에 오히려 파도에 휩쓸려 침몰했을 가능성도 있다.

사고 선박의 유일한 생존자인 미얀마인 묘테이(29)씨는 “침대에서 잠을 자다 떨어진 뒤 갑판에 나가보니 선원들이 왼쪽으로 기울어진 선박의 균형을 잡기 위해 무척 분주했다”고 말해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사고 당시 해역은 평균 풍속 초속 10m의 강풍과 높이 3m 이상의 파도가 치는 악천후였고, 선박은 평균 10노트의 속도로 운항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 선박이 선박의 균형을 잡기 위해 배 밑바닥과 좌우에 설치된 밸러스트 탱크에 밸러스트수(水)를 제대로 채우지 않고 출항해 높은 파도에 복원력을 잃고 침몰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밸러스트수 미보충이 사고원인이라는 시각은 밸러스트 운용과 이를 이용한 선박 운항방법 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해경은 “화물인 질산과 밸러스트수의 적재 상태는 물론 검수ㆍ검량이 제대로 됐는지도 조사 대상”이라며 사고 연관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한편 해경과 해군은 이날 사고해역을 중심으로 사흘째 실종선원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추가 생존자 및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by facestar 2007. 12. 28. 1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