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스위스의 행주대첩, 에스칼라드
마이프라이데이기사입력 2007-12-10 13:42
프랑스, 로욤 부인의 수프에 무릎을 꿇다
미식가로 유명한 프랑스인들이 한 스위스 여인의 수프 앞에 무릎을 꿇은 사연? 맛있어서가 아니라 ‘뜨거워서’였다고 한다.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1602년 12월 12일에 프랑스 남동부를 지배하고 있던 사보이Savoy가의 군대가 제네바를 침공했다. 그런데 이 군대가 길눈이 어두웠던 게다. 성벽이 아닌 이 사건의 주인공, 로욤 부인의 스위트 홈을 기어올랐단다. 방향 감각을 상실한 것인지 개념을 상실한 것인지, 프랑스 군대의 모습에 기가 찬 로욤 부인은 때마침 끓이고 있던 수프를 솥째로 던져버렸다. 조선시대에 권율 장군이 이끈 행주치마 부대가 있었다면 스위스에는 수프로 적군을 물리친 로욤 부인이 있었던 것. 에스칼라드 축제는 수프로 제네바를 지킨 로욤 부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열리게 되었다
구시가지에서 멋진 중세의 기사를 만나라
축제 동안 제네바는 17세기 그 시절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제네바 시민 각자에게는 주어진 역할이 있다. 창과 방패, 철갑을 두른 중세의 기사 ‘1602 부대’는 골목골목 순찰을 돌고 앞치마를 두른 부엌의 여전사들은 장바구니 가득 수프 거리를 준비한다. 또 동화 속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예쁜 전통 복장의 아이들은 거리를 활보하며 군것질 거리를 얻어낸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 밤 구시가의 대성당 앞에서 펼쳐진다. 무려 1000여 명의 제네바인들이 횃불을 들고 론Rhone 강둑을 따라 행진하며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노래 ‘스 크 레노Ce Qu’s Laino’로 축제의 분위기를 달군다. 대성당에 이르면 행진은 끝이 나는데 이때 주목해야 한다. ‘나의 기사님이었으면’ 하고 소망할 만한 곱슬머리 중세의 기사가 야성의 자태를 뽐낼 테니 말이다.
에스칼라드에서는 와인, 초콜릿, 수프를 즐긴다
여기까지 왔으니 로욤 부인의 기막힌 수프 맛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 재미있는 것은 수프는 물론 냄비까지 통째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에스칼라드 축제의 마지막 날, 수프의 재료로 쓰이는 야채 모양의 아몬드 설탕 과자가 가득 담긴 초콜릿 냄비를 볼 수 있다. 손으로 초콜릿 냄비를 부수고 마르지판Mrzipan이라 불리는 야채 모양 과자를 전투적으로 낚아채 먹는 것이 이들의 풍습이다.
진짜 수프를 맛보려면 빌 호텔Hotel de Ville로 향한다. 빌 호텔 건너편에 자리한 옛 무기고에 가면 사보이 군대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준 수프의 참 맛을 체험해볼 수 있다. 한 가지 더, 에스칼라드 축제 기간 중 1년에 단 한 번 대중에게 공개된다는 비밀의 통로인 ‘몬티에Monetier’도 놓치지 말자. 깜깜한 밤, 옛 요새의 벽으로 이어지는 이 통로를 통과하는 용감한 자에게는 추위에 특효인 따뜻한 와인 ‘뱅 쇼Vin Chaud’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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