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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균제품들. |
바이러스성 질환에는 항균제품도 ‘속수무책’
세균 내성만 키울수도 환경호르몬 생산 주범 비누와 세제는 물론 칫솔, 장난감, 공기청정기, 이불, 벽지, 창틀, 부엌 조리대, 컴퓨터 키보드까지…. 집안 곳곳에 붙은 ‘항균’ 표시는 조류인플루엔자, 대장균 등 ‘세균과의 전쟁’에 지친 소비자들을 안심시킨다.
미국에서 새로 출시된 항균제품은 2003년 200개에서 지난해 1600개로 8배가 늘었고, 우리나라 항균성 가정용품 시장도 매년 20%의 성장을 거듭해 지난해 1500억원 규모로까지 커졌다.
항균제품은 기존의 제품에다 세균을 죽이는 성분을 첨가해 만든다. 가령 항균비누의 경우 세균을 없애는 화학물질 트리클로산을 넣어, 세균을 물에 씻겨나가게 하는 일반비누와 차별화한다. 세탁기나 젖병 등 가전제품·유아용품에는 은, 숯, 옥, 대나무 등 항균기능이 있는 천연소재를 활용하기도 한다.
과연 항균제품은 가격만큼이나 정말 효과가 있을까. 일반비누를 사용해 세균이 물에 씻겨나가는 것보다 항균비누로 세균을 죽여 없애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할까.
13일자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뉴욕의 228개 가정을 반으로 나눠 한쪽은 일반비누, 다른 쪽은 항균비누를 사용하게 한 결과 구토·설사·고열·콧물·기침 등의 증상이 보고된 숫자가 양쪽 모두 비슷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감기·독감 등 세균이 아닌 ‘바이러스’를 통해 감염되는 질병에는 항균제품이 속수무책이라는 뜻이다.
터프츠 의대의 스튜어트 레비 박사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항균제품이 오히려 세균의 내성만 키운다”고 주장했다. 그는 저서 ‘항균 패러독스’에서, 항균제의 초기 공격에서 살아남은 강력한 세균은 항균물질에 대항하는 새로운 방어기제를 개발해, 아무리 항균제를 써도 죽지 않는 내성을 지니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새롭고 발전된 방식의 ‘항균제 방어 노하우’를 다른 세균들에게 전수해주는 ‘교차내성’까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항균제품이 세균을 닥치는 대로 없애 ‘너무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도 문제다. 사람의 면역체계는 유아기에 온갖 더러운 것들을 입에 마구 집어넣으면서 형성된다고 한다. ‘무균’ 또는 ‘살균’ 상태에서 자란 아이들은 면역력이 약해 오히려 알레르기, 천식, 피부병이 생긴다는 여러 연구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항균제품은 암과 기형아 출산을 유발하는 환경호르몬 다이옥신을 만들어내는 주범으로도 지목된다. 워싱턴포스트가 소개한 2002년 미 지질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강물·개울물의 60%에서 항균제 트리클로산이 검출됐다. 하수에 들어있는 염소가 트리클로산과 반응하는 과정에서 다이옥신이 생성되는데, 이는 수생생물에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생태계 전체에 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미네소타대의 화학자 크리스토퍼 맥닐은 “사회 전체가 항균제를 너무 남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며 “내성이 생겨 항균제를 아무리 써도 죽지 않는 세균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반론도 있다. 미 비누세제연합회 브라이언 샌소니 부회장은 “편협하고 근거 없는, 연구실 속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주장했고, 컬럼비아대 일레인 라슨 박사는 “병에 걸려있거나 면역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거나 신생아, 노인 등 병균의 공격에 취약한 이들에겐 항균비누의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며 효능을 일부 인정했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은 질병을 예방하고 싶거든 일단 손을 자주 열심히 닦으라는 것이다. 흐르는 따뜻한 물에 비누거품을 내서 손가락 사이사이까지 20초 이상 닦을 것. ‘평범한 비누’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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