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엑스레이 판독실엔 왜 여성밖에 없나
  • 쫓고 쫓기는 밀수의 세계
    “섬세하고 꼼꼼한 눈썰미 돋보여”… 판독실 80명 모두 여성
    70년대 일제 전자제품, 80년대 골프채, 2000년대 명품 짝퉁
    입국자 2%가 세관 검사대상… 대상 줄었지만 적발률 높아져
  • 신정선 기자 violet@chosun.com  이인묵 기자 redsox@chosun.com 
    입력 : 2007.11.30 23:40 / 수정 : 2007.12.01 11:14
    • 글로벌화의 바람을 타고 세계가 한 몸으로 연결되면서, 국내로 몰래 들여오는 밀수품의 양도 급속하게 늘고 있다. 검색 장비와 기술이 발전할수록 숨기려는 수법과 행태도 지능적이고 교묘해진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하늘과 바다의 길목을 지키는 인천공항과 인천항의 밀수 단속은 어떻게 이뤄질까. 어떤 물건들이 감시의 눈길을 뚫고 국내 반입을 시도할까.

      지난달 27일 오후 2시. 인천본부세관 화물검사과 안필환 반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컨테이너 보관소 검색 현장에서 걸려온 전화. “나왔습니다.” 그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비아그라 수만 알을 찾아냈다는 보고였다. “A업체의 서류가 어딘가 미심쩍다”는 안 반장의 직감이 들어맞은 것이다. 비아그라는 컨테이너 가득 들어있는 옷상자 사이에 숨겨져 있었다. 진품 가격으로 1억원이 넘는 분량이었다. “이제부터가 정말 중요한 겁니다.” 안 반장의 목소리에 흥분이 묻어났다. 밀수품이 섞인 화물은 화물주에게 정상적으로 통관된 것으로 위장 전달된다. 배달 컨테이너 뒤에 세관 조사원이 따라붙는다. 이른바 ‘통제배달’. 밀수범을 화물 전달 현장에서 잡아내기 위해서다. “화물만 걸러낸다고 끝이 아닙니다. 국내에서 퍼뜨리는 ‘꾼’들을 잡아내야죠.”


    • 10억짜리 벤츠 차량으로 컨테이너 들여다보고… 지난달부터 인천항을 순찰하기 시작한 10억원짜리 엑스레이 검색 차량. 컨테이너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모니터(위쪽 사진)를 통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 그래도 밀수품 수색의 일등 공신은 사람이 아니라 ‘엑스레이 검색기’다. 인천세관은 지난달 10억원짜리 이동식 엑스레이 검색기를 도입했다. 독일제 벤츠 제품이다. 컨테이너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내용물을 식별해낸다.

      강정수 반장이 차에 올라 버튼을 누르자 모니터에 컨테이너 속 모습이 비친다. “이건 비었고, 이것도 비었고….” 모니터에는 컨테이너 안에 든 철제 프레임의 모습까지 세밀하게 보인다. 조금이라도 어두운 부분이 보이면 화면의 밝기를 조절해 살핀다. 지나간 화면을 되돌려 볼 수도 있고, 일부분을 확대해 볼 수도 있다. 컨테이너 안에 버려진 쓰레기까지 보일 정도다.

      인천 세관에 설치된 컨테이너 검색기는 모두 2개. ‘검색기’라고는 하지만 3층 높이 ‘건물’이다. 검색 과정은 세차장과 비슷하다. 건물 속을 컨테이너가 통과하는 동안, 가로세로로 엑스레이가 투사된다. 주로 걸리는 것은 짐 속에 숨겨놓은 물건. 2005년 6월에는 A4 종이로 가득 찬 컨테이너 속에 숨겨놓은 금괴가 적발됐다. 의심스러운 점이 발견된 B컨테이너. ‘패션시계’라고 적혀있으나 ‘짝퉁시계’가 들어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컨테이너 보관소로 이동. 도착한 직후 안에 있는 모든 상자를 일일이 뜯어 검사한다.


    • 엑스레이로‘샤워’하고… 인천본부세관의 엑스레이 검색기 안으로 컨테이너를 실은 차가 들어오고 있다.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 인천공항 입국장

      비슷한 시각 인천공항 1층 입국장. ‘엑스레이 판독실’에는 공항 이용객들이 부친 모든 화물이 모니터에 잡혔다. 이곳에는 날카로운 눈이 160개 있다. 직원 80명 전원이 여성. 섬세하고 꼼꼼한 판독 능력이 큰 무기다.

      검색원 앞에는 컬러 모니터와 흑백 모니터. 물건의 밀도와 형체를 ‘색깔’로 나타냈다. 검색원이 수하물 하나를 살피는 시간은 평균 3초 정도. “저기 보이는 검은색은 금속이고, 넓게 퍼져 보이는 주황색은 옷이나 음식물입니다.” 판독실 서옥봉 반장의 설명이다. 서 반장은 “경력 15년 정도인 노련한 검색원은 엑스레이에 찍힌 양주 병뚜껑만 보고도 ‘발렌타인’인지 ‘루이 13세’인지 구별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판독실에서 가장 많이 잡아내는 물품은 뭘까. 몇 개월 새 보톡스나 태반 주사제가 부쩍 늘고 있다고 한다. 미용용 문신기도 늘었다. 외모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진 때문일까.

      판독실에서 의심 가는 수하물로 찍히면 ‘전자 꼬리표’가 붙는다. 반입 금지 음식물류에는 주황색 꼬리표, 식물류에는 녹색 꼬리표다. 꼬리표 수하물 주인은 세관 통과 시 검사대로 인계된다.

      입국장 검색대 한쪽에는 정밀하게 몸을 훑는 대형 보디 스캐너도 있다. ‘은밀한 곳’에 물건을 숨긴 것으로 의심되는 여행객을 검사한다. 마약·폭발물 탐지기는 수상한 성분을 색깔로 가려낸다. 보라색은 코카인, 빨간색은 폭발물이다.


    • 앗! 입국자 트렁크에 이상한 게… 인천공항 1층의‘엑스레이 판독실.’입국 여행자들이 부친 모든 화물이 여기서 검색된다. 직원 80명 전원이 여성.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 세관 창고와 압수 물품

      인천항에서 적발된 밀수품은 창고(1400㎡ 규모)행이다. 세관 측은 올 들어 급증한 짝퉁 시계 처리에 골머리를 앓았다. 시계는 상판 유리와 마크 부분을 철저하게 분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는 소각 전에 직원 10명이 붙어 망치로 부쉈다. 손이 달려 고심하던 세관 측은 시계 전용 분쇄기까지 도입했다.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지하 1층에는 창고가 두 곳 있다. 물품 소유자가 찾아갈 유치 창고와 소유권이 박탈될 압수 창고다. 유치 창고에 들어서니 4층 높이 선반 수십 개가 늘어서 있다. 선반마다 줄줄이 놓여있는 흰 봉지. 칼, 가루약으로 위장한 웅담, 육포, 호두, 마약 성분 진통제 등 온갖 밀반입품이 들어있다. 짝퉁 가방과 모자, 의류는 아예 선반 하나를 몽땅 차지할 정도로 넘쳐났다.

      압수 창고에는 냉동고도 있다. 문을 여니 봉지마다 인삼이 가득했다. 동물도 가끔 들어간다. 며칠 전 압수된 전갈이 까만 007 가방에 담겨있었다. 물론 꽁꽁 언 채로. 비아그라와 태반 주사제 등 불법 의약품도 창고의 ‘단골’이다.

      압수 물품은 어떻게 될까. 소각이 원칙이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 보관했다가 한꺼번에 모아 태운다. 1회 처리 분량은 10?. 지난해까지는 분기에 한 번 처리했지만 올해 밀수품 양이 늘면서 한 달에 한 번으로 늘었다.

      압수한 짝퉁 의류를 보육원에 기증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불법. 짝퉁은 원칙적으로 국내 반입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해당 상표권자가 원하지 않을 때도 있다. 옷 라벨을 없애고 상표를 지웠더라도 전체 디자인이 고유 자산이라는 주장이다.


    • 컨테이너 속에 웅크린 저건? 금괴… 엑스레이 검색기로 들여다본 컨테이너 속 모습. 종이 무더기(회색) 사이에 숨겨진 금괴(빨간 테두리 안쪽)가 까맣게 보인다.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 적발 1위는 비아그라

      가장 많이 적발되는 물품은 무엇일까. 전국 47곳 세관 통계 결과, 최근 3년간 비아그라류(비아그라, 시알리스 등)가 으뜸이다. 2005년과 2006년 적발 1위. 10월 현재 농산물에 이어 2위다. 금액으로는 기계·기구류(2005년), 의류·직물(2006년), 금·보석류(2007년)가 수위를 차지했다.

      밀수 물품도 시대상을 보여준다. 1960년대에는 대일 활선어선을 이용한 생필품(의류, 의약품)이 많이 들어왔다. 1970년대 들어서 외항선·항공기 승무원을 이용한 일본산 고급 전기 제품이 주를 이뤘다. 1980년대 급속히 늘어난 것이 귀금속, 녹용, 골프채. 1990년대에는 금괴나 중고 기계류가 큰 비율을 차지했으며, 2000년대에는 높은 세율을 피하기 위한 농수산물, 명품 소비자를 노리는 짝퉁이 급증했다. 1인당 면세품 한도는 미화 400달러 상당의 물품. 미화 1만달러를 넘는 외화 및 원화도 신고해야 한다.

      미술작품은 어떨까. ‘예술품’은 일반적으로 무관세. 오리지널 회화나 판화, 조각이 해당된다. 제작 후 100년이 지난 골동품도 무관세다. 다만 대량으로 들여와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복제품은 과세 대상이다. 미술품이 문제가 되는 것은 외환 거래액이 제대로 신고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 위조서류는 우편을 타고

      항공 우편물에도 비아그라, 짝퉁, 마약 등 온갖 밀수품이 숨어들어온다. 그래서 특급탁송화물은 전량 엑스레이 판독을 거친다. 최근에는 밀수품을 검색하던 세관의 눈에 위조서류가 걸려드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우편물에 들어있는 각종 위조 서류는 과세 여부와는 관련이 없으나 엄연히 불법. 세관에 적발되면 관계기관에 넘겨진다.

      위조 서류 중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는 것이 바로 학력 위조 서류. 예전에는 여권,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이 주로 적발됐으나, 지난해부터 졸업·성적증명서가 절반을 넘었다. 특급탁송화물로 들어온 각종 위조 공·사문서는 6월 현재 12건 70여 점. 2004년에는 4건 20점, 2006년 한 해 통틀어 80점이었다. 위조 서류는 상업용 서류나 홍보용 팸플릿 등에 교묘하게 끼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포장 상자 사이에 들어있기도 했다.

      10월 말 인천공항 화물터미널 A지역으로 통합·이전된 ‘국제우편물센터’. 여기서는 일반 우편물이 검색된다. 약 1만8300㎡(약 5500평) 검색센터에 들어서니 머리 위 검색대를 타고 우편물들이 끊임없이 오갔다. 엑스레이 검색을 거친 우편물은 수(手)검사를 위해 뜯겨야 할 우편물과 무사통과 우편물로 운명이 갈린다. 그렇다면 어떤 우편물이 수검사를 받게 될까. 수신인 주소가 호텔이나 여관으로 돼 있거나, 발신인이 불분명한 경우는 정밀 검색을 받는다. 해외 불법체류자가 우편에 외환을 숨겨 보내다 적발되기도 한다.

      인천공항 국제우편세관의 김정곤 우편검사과장은 “올들어 10월 현재까지 우편물을 통해 비아그라, 짝퉁 등 일반 밀수 145건, 마약류가 120건 적발됐다”며 “특히 마약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마약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건수로는 14%, 금액으로는 67% 늘었다.



      ‘왕따’ 조직원이 밀수 제보

      세관에서 밀수품을 잡기 위해서는 정보 수집이 필수다. 대상이 밀수품이라는 점만 다를 뿐, 경찰 조직의 형사라고 보면 된다. 인천세관 소속이라 해도 밀수품 정보만 잡히면 부산, 동해까지 쫓아간다. 제보도 큰 도움이 된다. 제보는 누가 할까. 밀수 조직 내부 갈등으로 조직원들이 주로 제보한다. 압수 규모에 따라 포상금이 있다. 조직에서 따돌림당한 조직원이 앙심을 품고 밀고하기도 한다.

      공항세관은 ‘여행자 사전정보분석시스템(APIS·Advanced Passengers Information System)’에 크게 의존한다. APIS는 항공기가 공항에 도착하기 전 수상한 여행자를 선별하는 제도. 특정 비행기가 지정되기도 한다. 승객 전원이 검색 대상이다. 하루 1~2기 정도다. 직업이 없는 사람이 홍콩을 자주 왔다갔다하거나 비행기표를 현장에서 급하게 구매하는 사람도 주의 인물이다. 짝퉁 밀수 조직원이거나 해외로 튀려는 범죄자일 수 있다. 여성이 바셀린이나 콘돔을 가지고 있어도 의심. 몸속 깊이 물건을 잘 숨기기 위해 가지고 다닐 수 있다.

      인천공항 입국자가 세관 검사 대상이 될 확률은 2% 정도. 2005년 여행자 1107만명 중 2.5%가 검사를 받았으며, 지난해에는 1221만명 중 2.1%가 대상이 됐다. 대상은 줄었으나 적발률은 38%에서 50%로 늘었다.



      ‘수작업만 피하면 대박’ 감행

      세관 검사에도 한계는 있다. 본부세관의 검사 물량은 전체 컨테이너 수입량의 2% 남짓. 그렇다고 모든 컨테이너를 조사할 수는 없다. 엄청난 물류 정체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최근 유행하는 밀수 수법 ‘커튼치기’는 세관의 이런 부담을 악용한다. 컨테이너 앞쪽 박스에만 수입 신고된 물건을 채우고 뒤쪽에 밀수품을 채운다. 수작업 검사는 확률이 낮기 때문에 ‘이것만 피하면 대박’이란 마음으로 밀수를 감행한다. 근래의 밀수 특징은 ‘점조직화.’ 20년 동안 3조원에 달하는 밀수품을 잡아낸 조사감시국 고석범 반장은 “예전에는 한 조직이 밀수품 구매·통관·유통을 전부 맡았으나, 이제는 판매하는 측도 물건을 받기만 할 뿐, 누가 어떻게 물건을 보내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 by facestar 2007. 12. 2.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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