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5년 ‘인생 역전’의 광풍은 가고…
  • 1등 당첨자의 30%는 꿈 꾸고 '행운' 잡아
    요즘 1등 당첨금 평균 17억원 2003년 42억원에서 크게 줄어
    복권 판매액·구입자 점차 감소 “그래도 혹시나… 희망은 못버려”
  • 허윤희 기자 (심층취재) ostinato@chosun.com 
    입력 : 2007.11.30 23:14 / 수정 : 2007.12.01 15:33
    • 서울 서초동에서 복권방을 운영하는 김기정(45)씨는 “초창기에는 한번에 로또 10만원 어치씩 사가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요새는 보통 1만~2만원씩 사가는 정도”라며 “한창 때에 비해 70~80% 정도 팔리는 것 같다”고 했다.

      2002년 12월, ‘인생 역전’이라 불리며 로또 복권 판매가 시작된 지 5년이 됐다. 한때 ‘로또 광풍’이란 말이 돌 정도로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로또. 대선철인 요즘, 한방에 모든 걸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로또 같은 대선’이라는 말도 나온다. 2007년 12월, 로또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로또 판매액은 첫해인 2003년 최고점을 찍은 후 해마다 조금씩 줄고 있다. 우리 국민이 로또를 사는 데 쓴 돈은 지난 5년간 총 14조3707억원. 사업자인 국민은행에 따르면, 연간 판매액은 2003년 3조8031억원으로 최고를 기록한 후 2004년 3조2803억원, 2005년 2조7520억원, 2006년 2조4715억원, 2007년 11월말 현재 2조638억원으로 매년 10% 이상 감소했다.

      국민은행 측은 “로또는 단일 상품이기 때문에 게임이 다양화되지 않는 데다 사람들이 로또를 계속 사도 당첨이 되지 않아 구매 의욕이 떨어지는 ‘로또 피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 몇 번을 골라야‘대박’이 터질까…. 한 시민이 로또 용지를 펼쳐놓고 신중하게 숫자를 고르고 있다. /채승우기자 rainman@chosun.com

    • 단지 그 이유뿐일까. 또 다른 사업자인 코리아로터리서비스(KLS)의 진희창 부장은 “2004년 8월부터 로또 판매가격이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내려가 1등 평균 당첨금이 줄면서 매력을 잃은 것”이라고 꼽았다.

      로또 1등의 확률은 814만분의 1. 1500년동안 매주 10만원씩 복권을 사야 한번쯤 1등에 당첨된다는 얘기다. 벼락을 열여섯번 맞는 것보다 어렵다.

      가격이 2000원이었을 때는 확률상 1등의 평균 당첨금이 37억원이지만, 한 장당 1000원으로 내리면 당첨금도 19억원으로 낮아진다. 실제로 연간 1등 평균 당첨금은 2003년 42억원에서 올해 11월 말 현재 17억원까지 떨어졌다.

      가격이 낮아지면서 전체 복권 매수는 늘어났고, 확률적으로 1등 당첨자 숫자도 늘어났다. 최근 들어 1등을 독식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이유다. 올해의 경우 11월 말 현재 회차당 평균 1등 당첨자수는 6.09명. 2003년에는 4.02명이었다. 당첨자 숫자만큼 당첨금을 나눠 가지기 때문에 실제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당첨금도 더 줄어드는 셈이다.

      초창기 ‘로또 광풍’이 불었던 이유는 그야말로 ‘인생 역전’의 희망 때문. 로또가 2002년 말 도입되자마자 기존 복권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갈아엎었던 것은 엄청난 당첨금의 힘이었다.

      1등이 나오지 않으면 당첨금이 이월돼 다음 회차 1등 상금에 합산되면서 당첨금이 수백억원대로 뛰었다. 이 때문에 ‘맞기만 하면 대박난다’는 꿈을 안고 너도 나도 로또를 사들이는 붐이 일었던 것.

      ‘로또 광풍’의 사행성 논란이 제기되자, 정부는 2003년 2월 15일 제11회차부터 1등 당첨금 이월 횟수를 5회에서 2회로 줄이고, 3회째에도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2등 당첨자들이 1등 당첨금을 똑같이 나눠 갖게 했다.

      당첨자가 내는 세금도 초기보다 많아졌다. 2004년 1월부터 5억원 이상의 당첨금에 대한 세율을 기존 20%(주민세 포함 22%)에서 30%(주민세 포함 33%)로 인상했다. 올해부터는 30% 세율 적용 기준금액을 5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췄다.

      유영진(31·대학원생)씨는 “요즘은 로또 당첨이 된다고 해도 그 돈으로 ‘인생 역전’까지는 안 되지 않느냐”며 “초기에 하도 열풍이 불기에 몇 번 사봤는데 이제는 별 관심 없다”고 했다.


    • ◆로또를 사는 사람들

      판매액이 줄면서 판매업소도 감소 추세다. 전국의 복권 판매업소는 지난 2003년 5070개소에서 2004년 9287개소로 정점에 달했다가 2005년 8024개, 2006년 7592개, 2007년 현재 7363개소로 꾸준히 줄고 있다.

      부산 범일동에서 복권 판매점을 운영하는 권광택(41) 사장은 “우리 집에서 로또 사는 사람들은 신혼 부부, 회사원, 삶에 찌든 사람, 당장 돈이 필요한 사람 등 다양하지만, 거의 다 평범한 서민들”이라고 했다.

      지난 3월 한국갤럽이 KLS의 의뢰를 받아 전국 중소도시 이상 지역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남녀 13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41.7%가 6개월 안에 복권을 구입한 경험이 있다. 연령별로는 30대가 49.9%로 1위, 40대(44.4%), 50세 이상(36.6%), 20대(36.2%) 순으로 뒤를 이었다.

      직업별로는 ‘블루칼라’가 57.7%로 가장 많았고, 자영업(51.0%), 화이트칼라(47.7%), 무직(45.5%), 가정주부·학생(각각 28.7%) 순이었다. 1회당 평균 구입 비용은 6238원. 가구 소득이 1999만원 이하인 층에서 매주 로또를 구입하는 비율(30.3%)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원 김진송(39)씨는 매주 2만원씩 로또를 사는 ‘마니아’. 김씨는 “상사한테 꾸중을 들을 때마다 주머니 속에 있는 로또를 만지작거리며 참는다”고 했다. “살 때마다 ‘1등만 당첨되면 내가 진짜 사표 쓴다’고 벼르죠. 그러면 아주 잠깐 기분이 좋아집니다. 빤히 안될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거, 뭐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장애인 아들을 두고 있는 이모(36)씨는 2년 전부터 매주 로또 5000원어치씩을 산다. 생활비가 떨어져 밥을 굶기도 하지만, 로또 구입을 거른 적은 없다. 로또 한 장을 사기 위해 아내와 2시간을 걸어간 적도 있다. 그는 “5등짜리 한 번 당첨된 적이 없지만, 종이 한 장에 매번 ‘만약에…’라는 희망을 걸게 된다”고 했다. “3억원에 당첨이 되면 1억원으로 우리 아이 수술하고, 월세를 벗어나 전셋집이라도 들어가고…. 조그만 분식집을 운영해서 착착 돈을 모으는 상상을 하면 잠시라도 행복해지니까요.”

      그러나 지난 5년간 한국은 로또로 인해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단란했던 가정이 천문학적인 당첨금 때문에 파탄이 나는 등 부작용이 컸다. 지난해 3월에는 5년 동안 사실혼 관계로 살아온 부부가 로또 1등 당첨금 19억원의 분배 문제로 법정에 섰다. 복권은 남편이 구입했지만, 당첨금은 부인이 보관하던 상태에서 남편이 “부모님 전셋집 마련할 돈을 달라”고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며 다툰 것.

      수배 도중 로또 1등에 당첨돼 호화생활을 해오던 20대 강도 피의자가 마산에서 붙잡힌 일도 있었다. 지난 6월에는 부산의 한 50대 남자가 “드라이클리닝을 맡긴 양복 속 주머니에서 내 로또복권을 가져가 1등에 당첨됐다”며 세탁소 주인을 상대로 60억원대 로또 당첨금 반환 소송을 내기도 했다.
    • 28일 오후‘로또 명당’으로 이름난 서울 상계동 S편의점. 1등 당첨자를 7번이나 배출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 ◆기록으로 본 로또

      로또는 5년 동안 각종 기록을 낳았다. 역대 최고 당첨금은 2003년 4월 12일 19회차의 407억원. 강원도 춘천의 경찰관 박모씨가 대박의 주인공이 됐다. 이어 25회차 242억원, 20회차 193억원, 43회차 177억원, 15회차 170억원 등의 순으로 ‘대박 당첨금’이 나왔다. 최저 당첨금액은 지난해 9월 2일 196회차 추첨에서 나온 7억2000만원. 최고액의 50분의 1도 안 된다.

      1등 당첨자가 가장 많이 나온 건 21회차. 무려 23명이나 나왔다. 지난 260회차까지 1등 당첨자는 모두 1382명. 당첨금을 합하면 3조3500억여원에 달한다. 1인 평균 24억2500만원 정도다.

      가장 많이 나온 숫자는 뭘까. 37이 45회나 나와 1위를 기록했다. 이어 40(43회), 4·36(각각 41회), 2·3·19(각각 40회) 순서다.

      1등 당첨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판매점은 서울 상계동의 S편의점과 충남 홍성의 C복권방.

      각각 7명씩을 배출했다. 부산 범일동의 B복권방은 5명의 1등 당첨자를 내 3위를 기록했고, 충북 청주 가경동의 D 판매점, 서울 중계2동의 가판점은 4명으로 공동 4위를 기록했다. 이들 ‘명당’들엔 입소문이 퍼지면서 ‘로또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 상계동 S편의점의 김현길(52) 사장은 “일주일에 평균 3만명 정도가 로또를 사러 온다”며 “토요일 하루에만 1만명 이상이 몰려 오기 때문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고, 이 일대 교통이 마비될 지경”이라고 했다.

      부산, 제주도 등 전국에서 몰려오고 직접 오지 못하는 단골과 해외 고객에게는 우편으로 보낸다.

      김 사장은 “1시간 이상 걸어와서 제 손을 잡고 기를 넣어달라는 분들도 있고, 로또 용지에 콧기름 발라달라는 분들도 있다”며 웃었다.

      국무조정실 산하 복권위원회의 2004년 조사를 보면, 1등 당첨자의 3분의 1 정도는 꿈을 꾸고 당첨되며, 이 중 25%가 조상 꿈을 꿨다고 한다. 꿈에서 물을 접하거나 숫자를 보고 대박을 맞은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당첨되고도 이를 몰라 찾아가지 않는 돈도 2650억원(2007년 10월 말까지)이나 된다. 심지어 1등에 당첨되고 찾아가지 않은 사람도 13명. 당첨금만 377억원에 달한다. 이 돈은 다 어디로 갈까. 현재 당첨금 지급 기간은 6개월. 이 기간 안에 찾아가지 않으면 수십억원짜리 복권도 휴지조각이 된다. 미지급금은 그대로 복권 기금으로 넘어간다.

      당첨금은 어떻게 전달될까. 액수가 워낙 커서 현금으로 받는 것은 무리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당첨금 수령지인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복권사업부 사무실에서 통장으로 직접 건넨다”고 했다.

      ◆제2기 로또시대 열린다

      이제 2일부터는 ‘로또 2기시대’가 열린다. 1기 사업자였던 국민은행·코리아로터리서비스(KLS) 대신 유진그룹·농협이 주축이 된 ‘나눔로또’ 컨소시엄으로 바뀐다. 앞으로 5년 동안 로또 사업을 맡게 된 유진그룹 측은 “로또 수익을 공공재원 마련에 사용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사행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남아있다. 지난 3월 한국갤럽 조사 결과에 따르면, ‘로또가 어떤 점에서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42.9%가 ‘쓸데없는 사행심을 조장한다’고 답했다. 10명 중 5명에 가까운 응답자가 로또의 사행성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 것이다.

      사행성 방지를 위해 1인당 하루 구매 한도를 10만원으로 제한해놓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를 통제할 방법은 없다.

      상계동 S편의점 직원 임모(38)씨는 “10만원어치를 사고 가게문 열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또 10만원어치를 사가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1000만원을 맡겨놓고 가면서 매일 조금씩 자동으로 해달라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 ‘당첨 빈도가 높은 숫자를 찍어라’ ‘당첨 번호 중 홀수와 짝수 당첨 숫자의 합계 분포를 따져라’ 등 통계를 이용해 숫자를 골라준다는 ‘황당한’ 당첨 비법 사이트도 유행한다. 목포대 수학과 박형빈 교수는 “복권은 철저히 확률로 이루어진 수학이기 때문에 시중에 떠도는 당첨 비법 같은 건 전혀 소용없다”며 “대박의 꿈을 좇기보다는 1000원짜리 한두 장 사서 건전하게 오락으로 즐기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 by facestar 2007. 12. 2.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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